기업가정신을 깨워라
성공한 사람들에겐 기업가정신이 있습니다.
번영하는 국가에는 기업가정신이 넘칩니다.
한때 우리 사회를 이끌었던 기업가정신이 쇠락하고 있습니다.
기업가들의 모럴해저드와 경제 성장의 피로증으로 기업가정신이 후퇴하였습니다.
또한 후진적인 정치권력이 기업가정신을 지속적으로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60년대 경제 개발정책을 통해 우리는 기업가정신을 학습하였습니다.
척박한 이 땅에 굴뚝산업을 일으킨 경제정책보다도 그 과정을 통해 뿌리내린 기업가정신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후 무수한 기업가들이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며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을 걸어 왔습니다.
기업이 없던 우리 사회에 왕성한 기업가정신의 확산으로 세계적인 경제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2009년 상반기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불안감이 가중되는 시기입니다.
오늘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어느 중소기업인의 기업가정신을 소개해 드립니다.
어려운 시기에는 우리 안에 있는 기업가정신을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내 안에 잠든 기업가정신을 깨워라
그는 서해바다가 있는 대천에서 소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소를 몰고 꼴을 베면서 보내는 일상이 답답했습니다.
큰 뜻을 이루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결심으로 그는 어머니를 조르고 또 졸랐지요.
서울로 떠나던 날, 보리쌀 한 말이 든 자루를 손에 쥐어주시고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한없이 손을 흔들던 어머니 모습을 그때나 지금이나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그가 가진 것이라곤 공부하고 싶은 열망과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두 주먹뿐이었습니다. 광화문 뒷골목에 셋방을 구하고 껌팔이, 신문배달 등 닥치는 대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항상 배고픈 생활이었지요.
그런 생활로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낡은 영문법 책의 저자
덕분에 공부만 하게 해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소년에게 맡겨진 일은 기도를 보는 것이었지요. 물론 도강하는 학생들과 몸싸움하며 출입을 막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하는 생활에도 어려움은 많았습니다.
그 후 패기가 있고 실행력이 강한 장남을 믿고서 부모님은 논과 소를 팔아 자금을 쥐어줍니다.
그는 당시 이 돈으로 광화문에서 독서실을 운영합니다. 학원가와 기업체 직원들이 밀집되어 있는 광화문 지역에는 독서실이 없어 갈 곳 없이 전전하던 친구들을 보고 그는 독서실을 운영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독서실은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층에서 다섯 개 층으로 늘려야 할 만큼 성공적이었지요. 이 독서실 출신 친구들은 이 후 한국의 정계나 재계에 진출하여 성공하였고, 지금도 만나면 여전히 옛이야기를 나누는 평생 친구가 되었습니다.
돈 벌며 공부하던 청년은 단국대 행정대에 진학하여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돈을 벌고 싶었던 청년은 미루나무밭이던 잠실에 아파트가 들어설 무렵 아파트 상가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지요. 우직한 시골 청년은 기사 딸린 자동차를 타고, 명동의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을 드나들며, 은사의 소개로 어여쁜 아내와 혼인하는 억세게 운 좋은 청년 실업가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의 건설 붐은 한국 사업가들에게 초유의 관심사이자 비즈니스 기회였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던 그는 그 동안 번 돈을 모두 모아 전북 익산에 있는 산을 구입합니다.
보령의 성주산 남포석이 벼루를 만드는 데 최고였고, 이런 성공을 보아온 터라 큰 기대감으로 채굴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일본에 수출계약을 맺는 등 호조를 보이던 광산사업은 캐낼수록 풍화작용으로 인한 틈으로 상품 가치가 없는 돌로 판명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계약이 파기되고 난관에 부딪히지만 좀더 밑으로 내려가면 풍화가 안 된 좋은 화강석이 나올 거라는 믿음으로 밀어 붙였습니다.
더 좋은 집에서 편안히 모시고 싶었던 어머니, 아내, 애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인부들은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건비를 정산하라며 난동을 부리던 인부가 그의 목에 쇠삽을 들이대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이 벼랑 끝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동안 고민과 좌절 끝에 그는 마아철저(磨我鐵杵)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꿈을 잃지 않는다. 나는 나를 더욱 갈고 닦는다. 실수는 철저히 파헤치고 나 자신은 쇠를 갈아서 절굿공이를 만들 듯 강하게 연단한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성공한다.”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 및 주유소를 운영하는 대보유통, 건설업체인 대보건설과 대보실업, 전문 IT업체인 DB정보통신, 서원밸리골프클럽 등 총 8개 계열사를 운영하는 대보그룹 최등규 회장 이야기입니다.
그는 2,000명의 임직원과 연간 매출 5,000억원 규모에 부채가 전혀 없는 알짜배기 기업으로 자수성가 하였지요. 아직 큰 규모가 아니지만 왕성한 기업가정신으로 더욱 크고 밝은 미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어머니 배웅을 받으며 상경하던 소년시절의 초심을 기억하고 있는 거지요.
주변에서 이젠 그만하라고 만류하지만, 그는 생산 현장을 가장 이해하는 경영자, 몸소 실천하는 경영자, 직원의 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고향과 그가 꿈을 키운 모교를 후원하는 일, 나아가 사회와 지역에 기업 이익을 나누는 경영자가 되려고 노력하며, 자신을 늘 돌아보는 겸손함과 누구와의 약속도 소중하게 대하는 진실한 태도, 그리고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기업가로 평가 받길 원합니다.
누구에게나 포기하느냐, 다시 시도하느냐 하는 두려운 시기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위대한 인물보다도 이처럼 성공한 기업가들의 기업가정신을 배우기 바랍니다.
기업가정신은 개인 및 기업과 국가에 꼭 필요한 비타민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정신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자기혁신의 바탕이라고 했습니다. 기업가정신은 경제에서 필요한 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도 필요하고, 기업에서 필요한 만큼 공공서비스 기관에서도 필요하며,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할 때 비로소 한 사회가 ‘다음 사회’로 진보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지요.
기업가정신은 실용적이고 매우 간단합니다. 다만 실천이 필요할 뿐이지요.
[출처]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업나라> 2008.1월호에서 최등규 회장 인터뷰 기사를 부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