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행복을 느끼기 어렵지만 쉽게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인간의 소유욕 때문에 마음과 富의 소통이 닫히기 때문이지요.
지구상에는 인류 전체가 나누어 가져도 충분한 돈과 식량, 석유... 그리고 人情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누지 않고 소수가 독점하면서 다수는 부족한 자원을 두고서 다툼을 벌이지요. 이를 관망하는 소수의 강자는 다수의 약자를 조종하는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일부 善한 권력도 있지만 권력의 속성은 사악한 성질을 갖지요.
인류의 역사는 사악한 권력의 승계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대륙과 인종, 국가를 떠나서 어디든 권력은 사악하지요.
하지만 시대는 다수의 약자끼리 결속하는 저항권을 키워 놓았습니다. 소수의 강자는 저항하는 다수 앞에선 한계를 노출하지요.
권력과 富를 나누면 사회가 균형을 이룹니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권력과 돈은 흘러야 합니다. 권력자와 부자들이 다수의 약자를 위해서 가진 것을 내어 놓아야 사회는 진보합니다.
인간이라면 머지않은 시간에 모든 걸 두고 떠나야 합니다. 힘겹게 과적차량 끌면서 욕심에 지치지 말고 부와 권력을 나누어야지요. 무한대로 향하는 욕심 대신... 멈추어야할 경계선을 긋고서 십분지 일은 나누어 소통시켜야 합니다.
가진 자가 먼저 10%를 나누고,
베품을 받은 자도 창조적 활동을 통해 다시 10%를 나누고, 그 베품을 받은 자도 더 작은 창조적 활동으로 자신의 10%를 나누고... 이렇게 10% 나눔의 릴레이를 통해서 사회는 진보할 수 있습니다.
불균형이 소통될 때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는 행복이 커집니다. 생각이든 물질이든 疎通이 가장 중요합니다.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는 사회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격을 향상시키는 바람직한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창조적 자본주의'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름없는 저 또한 실패와 가난의 고통을 맛보면서 진정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관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무소유를 구도하는 수도승이 아니라면 가난을 벗삼아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부유하고 풍요로워야 하지만 이 또한 행복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이웃이 가난하고 슬프고 악하고 시끄러운데 혼자서 높은 담을 쌓아놓고 호의호식하면 행복할까요?
행복한 사회 속에서 행복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에 속할 때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이 많은 것이지요. 그래서 '창조적 자본주의'와 '창조적 기부'는 바람직한 미래사회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켠에 치우친 富를 부족한 다른 켠으로 베풀고 나누어 줌으로서 사회는 진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착한기부자재단>을 꿈꾸고 있으며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를 대하면서 우리 지척에 일어나고 있는 삼성 가문의 부족함을 개탄해 봅니다. 아직 공동善에 대해 시야를 열지 못한 이건희 회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빌 게이츠와 이건희 회장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마침 이에 대한 글이 있어 옮겨 보았습니다.
[출처] 데일리서프라이즈 2008.1.28 이석원 편집국장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와 삼성 이건희 회장
미국의 부자들을 보면 대단하다. 어마어마한 집이며, 굴리고 다니는 자동차의 화려함, 그리고 옷과 보석, 각종 장식품 등 꾸미고 다니는 것들이 가히 찬란하다고 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들은 당당하다. 자신이 누리는 부를 감추려고 하는 법이 없다. 설령 졸부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 같은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야말로 자본주의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미국 부자들이 그처럼 삶에 있어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이 향유하는 것 뿐 아니라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아낌없이 나누어 줄줄 아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미국의 부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평균적인 기부율을 보면 상당수의 부자들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번 돈 내가 마음껏 호사스럽게 쓸 뿐만 아니라 나 같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나누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사치를 한다고 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사람들을 보면 금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들은 확실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지만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만큼의 기부를 통해 자신의 부를 재분배하는 일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대한 평가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에 있어서도 늘 정당할까?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는 전 세계 최악의 독점 기업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하부 단위 노동자들은 일정정도의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고, 또 마이크로 소프트로 인해 자국의 유사 중소기업이 처참한 도산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의 투자 형태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의 기가 막힌 주식 투자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전 세계 개미투자자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경우에 따라 한 기업을 부도덕하게 인수 합병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적인 전 세계인들은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을 ‘아주 선한 부자’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들이 잘못하는 일까지도 심정적으로 이해해 주게끔 만큼의 기부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부자들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든, 현대기아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든, 그들이 1년에 얼마만큼의 사유재산을 벌어들이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사회를 위해 재분배하는 돈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사유재산의 몇 % 정도가 사회로 환원되는지 모르겠다.
자진해서 환원하거나 기부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단히 잘못해서 법원에서 명령을 했거나, 또는 여론을 의식해 얼마간의 재산을 내놓겠다고 한 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내놓는 시기를 늦추고 미루기도 한다.
태안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삼성은 신문지상에 “잘못했다”고 광고를 내기는 했지만 보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다. 잘못한 것은 있지만 배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누가 야단치지 않고, 항의하지 않고, 데모하지 않아도 알아서 책임질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검찰에서, 또 법원에서 뭐라고 얘기하는지 눈치나 살살 보고 있다.
설령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더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지 않더라도, 근근히 먹고 사는 서민들이 ARS 전화 한번 걸어 2000원 씩 걷고 있는 것을 보면, 수십, 수백억 원 쯤 시원하게 내놓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어민들이 모진 목숨 끊고, 엄동설한에 서울역 한복판에서 시위를 해도 그날 밤 수십만원 짜리 저녁밥을 먹고, 수백만원어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수 만명의 어민들이 찢어진 속옷 들고 나와 돌맹이 기름때를 닦고, 먹고 살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을 때 수억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수백만원 짜리 옷 자랑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던 빌 게이츠 회장이 지난 2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말을 했다. 그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자본주의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하루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전 세계 10억 빈민을 도울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고 주창했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받은 혜택을 일부에 국한시켜서는 안된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다. 빌 게이츠가 2000년에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배포한 ‘빌 게이츠 연설문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기업 커뮤니티가 어떻게 정부, 비정부 조직들과 연계해 기술적인 혁신을 이뤄내고, 불평등을 줄여 나갈 것인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 기업가가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빌 게이츠는 ‘가난은 나랏님도 구하지 못한다’는 우리의 옛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책임방기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2005년 한 해 동안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구호활동에 135억 6000만 달러(한화 약 12조 8000억원)를, 2006년엔 156억 2500만 달러(한화 약 14조 80000억원)를 썼다. 워렌 버핏은 빌 게이츠의 이 재단에 총 370억 달러(한화 약 35조 1400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현재까지 34억 달러(한화 약 3조 2200억원)을 기부했다.
이런 부자와 함께 사는 미국인들과 그 부자들의 자본주의를 마냥 부러워만 해야 되는 것인지. 우리나라 재벌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 항상 기대난망인 것인지....
1973년 하버드대에 입학했으나 1975년 자퇴했었던 빌 게이츠는 지난해 6월 32년 만에 하버드대 명예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빌은 그 자리에서 이 세상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과 가치에 관해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세상에 지독한 불평등, 즉 수백만 명을 절망에 빠뜨리는 건강과 부(富), 기회의 불균형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하버드대를 떠났다"고 고백하면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주창하였습니다. '시장'과 '기술혁신'을 활용하여 가난과 질병으로 인한 인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빌 게이츠가 지난 1월 24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다시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창했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자본주의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특권층의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그의 호소에는 가진 자, 누리는 자의 도덕적 의무와 소명의식까지 담고 있다. 창조적 자본주의를 이끌어갈 주체는 바로 기업이다.
기업들은 기업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으며 이익의 일부는 사회적 의무로서 도움이 필요한 기업과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富를 나누고 베풀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개인이나 기업을 도와야 합니다.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의무로 격상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소비적 도움보다도 생산성 있는 비즈니스 활동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움 받은 쪽에서 富의 생산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후원자가 복제되는 셈이지요.
만일 <착한기부자클럽>나 재원을 확보한다면 기업과 개인의 생산적인 활동에 창조적인 기부를 후원할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을 통하여 새로운 기부를 창출할 수 있기에 매력적입니다.
<착한기부자클럽>의 컨셉은 빌 게이츠가 주창하는 '창조적 자본주의'와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富를 나누고 베풀어서 세상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가진 자와 가진 기업이 富를 기부함으로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 빌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
빌 게이츠 회장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21세기를 위한 자본주의는 시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자본주의는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만 작동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시장의 힘이 어떻게 소외계층을 도울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기업들과 비정부조직이 함께 일하면서 전세계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시장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게이츠가 처음으로 주창한 '창조적 자본주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기업도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업의 봉사를 사회적 책임 차원이 아닌 의무로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사회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기업들이 소외계층을 위해 환원할 의무가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게이츠는 오는 7월경 MS의 회장직에서 물러나 부인과 함께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한 자선활동에만 전념할 계획이다. 게이츠 회장이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모임인 다보스 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강조한 것은 구호금 전달과 자원봉사자의 투입이라는 전통적인 자선재단의 활동에서 벗어나 재단사업을 비즈니스화하는 청사진과 함께 각국 정부의 정책 지원 및 초일류기업들의 연대가 필요한 까닭이다.
앞으로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전파에 심혈을 기울일 전망이다. 게이츠는 "전세계는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여성과 소수자들의 인권이 개선되는 등 끊임없이 더 나아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개선은 과학과 기술, 의학의 발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낙관론자지만, 참을성이 없는 낙관론자"라면서 "대부분의 혜택은 개선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혜택이 별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이츠는 "현명한 자본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더 넓은 사회의 이익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부가 증가할 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도태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 자본주의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