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는 사회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격을 향상시키는 바람직한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창조적 자본주의'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름없는 저 또한 실패와 가난의 고통을 맛보면서 진정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관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무소유를 구도하는 수도승이 아니라면 가난을 벗삼아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부유하고 풍요로워야 하지만 이 또한 행복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이웃이 가난하고 슬프고 악하고 시끄러운데 혼자서 높은 담을 쌓아놓고 호의호식하면 행복할까요?
행복한 사회 속에서 행복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에 속할 때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이 많은 것이지요.
그래서 '창조적 자본주의'와 '창조적 기부'는 바람직한 미래사회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켠에 치우친 富를 부족한 다른 켠으로 베풀고 나누어 줌으로서 사회는 진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착한기부자재단>을 꿈꾸고 있으며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를 대하면서 우리 지척에 일어나고 있는 삼성 가문의 부족함을 개탄해 봅니다. 아직 공동善에 대해 시야를 열지 못한 이건희 회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빌 게이츠와 이건희 회장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마침 이에 대한 글이 있어 옮겨 보았습니다.
[출처] 데일리서프라이즈 2008.1.28 이석원 편집국장
미국의 부자들을 보면 대단하다. 어마어마한 집이며, 굴리고 다니는 자동차의 화려함, 그리고 옷과 보석, 각종 장식품 등 꾸미고 다니는 것들이 가히 찬란하다고 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들은 당당하다. 자신이 누리는 부를 감추려고 하는 법이 없다. 설령 졸부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 같은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야말로 자본주의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미국 부자들이 그처럼 삶에 있어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이 향유하는 것 뿐 아니라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아낌없이 나누어 줄줄 아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미국의 부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평균적인 기부율을 보면 상당수의 부자들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번 돈 내가 마음껏 호사스럽게 쓸 뿐만 아니라 나 같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나누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사치를 한다고 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사람들을 보면 금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들은 확실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지만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만큼의 기부를 통해 자신의 부를 재분배하는 일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대한 평가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에 있어서도 늘 정당할까?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는 전 세계 최악의 독점 기업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하부 단위 노동자들은 일정정도의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고, 또 마이크로 소프트로 인해 자국의 유사 중소기업이 처참한 도산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의 투자 형태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의 기가 막힌 주식 투자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전 세계 개미투자자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경우에 따라 한 기업을 부도덕하게 인수 합병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적인 전 세계인들은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을 ‘아주 선한 부자’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들이 잘못하는 일까지도 심정적으로 이해해 주게끔 만큼의 기부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부자들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든, 현대기아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든, 그들이 1년에 얼마만큼의 사유재산을 벌어들이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사회를 위해 재분배하는 돈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사유재산의 몇 % 정도가 사회로 환원되는지 모르겠다.
자진해서 환원하거나 기부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단히 잘못해서 법원에서 명령을 했거나, 또는 여론을 의식해 얼마간의 재산을 내놓겠다고 한 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내놓는 시기를 늦추고 미루기도 한다.
태안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삼성은 신문지상에 “잘못했다”고 광고를 내기는 했지만 보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다. 잘못한 것은 있지만 배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누가 야단치지 않고, 항의하지 않고, 데모하지 않아도 알아서 책임질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검찰에서, 또 법원에서 뭐라고 얘기하는지 눈치나 살살 보고 있다.
설령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더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지 않더라도, 근근히 먹고 사는 서민들이 ARS 전화 한번 걸어 2000원 씩 걷고 있는 것을 보면, 수십, 수백억 원 쯤 시원하게 내놓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어민들이 모진 목숨 끊고, 엄동설한에 서울역 한복판에서 시위를 해도 그날 밤 수십만원 짜리 저녁밥을 먹고, 수백만원어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수 만명의 어민들이 찢어진 속옷 들고 나와 돌맹이 기름때를 닦고, 먹고 살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을 때 수억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수백만원 짜리 옷 자랑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던 빌 게이츠 회장이 지난 2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말을 했다. 그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자본주의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하루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전 세계 10억 빈민을 도울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고 주창했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받은 혜택을 일부에 국한시켜서는 안된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다. 빌 게이츠가 2000년에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배포한 ‘빌 게이츠 연설문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기업 커뮤니티가 어떻게 정부, 비정부 조직들과 연계해 기술적인 혁신을 이뤄내고, 불평등을 줄여 나갈 것인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 기업가가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빌 게이츠는 ‘가난은 나랏님도 구하지 못한다’는 우리의 옛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책임방기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2005년 한 해 동안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구호활동에 135억 6000만 달러(한화 약 12조 8000억원)를, 2006년엔 156억 2500만 달러(한화 약 14조 80000억원)를 썼다. 워렌 버핏은 빌 게이츠의 이 재단에 총 370억 달러(한화 약 35조 1400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현재까지 34억 달러(한화 약 3조 2200억원)을 기부했다.
이런 부자와 함께 사는 미국인들과 그 부자들의 자본주의를 마냥 부러워만 해야 되는 것인지. 우리나라 재벌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 항상 기대난망인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