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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뉴욕시장, 작년 기부금 늘려 3200억원
자선가 변신 빌 게이츠도 올해 재단 지원 늘리기로


“나처럼 행운이 따랐던 이들에게는 나빴던 경제가 더욱 악화된 지금이야말로 사회 환원을 할 최적기다.”(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경제위기로 제일 고통을 받은 이들은 빈곤층이다. 부자들은 기부를 계속해야 하며 선진국은 후진국 지원을 줄여선 안 된다.”(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세계적인 부자이면서 그동안 자선사업에 열심이던 두 사람이 경제위기를 맞아 기부금을 더욱 늘리고 있다.

미국 최고의 자선사업가로 떠오른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지난해 2억3500만 달러(약 3200여억원)를 1200여 개의 각종 단체에 기부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27일 보도했다. 그가 2007년 기부한 액수는 2억500만 달러. 경제 한파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동안 30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더 낸 것이다. 생전에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해 온 블룸버그는 “자선사업은 책임이 아니라 (있는 사람의) 특권”이라며 “자선사업가에게 최선의 삶이란 자신의 장례식 비용을 낸 수표가 부도 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실제로 기부금 액수는 2000년 1억 달러에서 2004년엔 1억3800만 달러, 2006년에는 1억6500만 달러로 매년 늘어왔다. 지난해 경제 불황이 닥치기 전까지 그의 재산은 200억 달러로 추산됐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에서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도 26일 자신이 운영하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올해 지원금 규모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재단 파트너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금융위기로 재단의 자산가치가 20% 정도 줄었지만 올해 지원금 규모를 늘려 38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전했다. 지난해 게이츠 재단의 총 지원금은 33억 달러였다. 이 돈은 에이즈 치료약 개발과 아동 사망 방지, 후진국 농업 개발 지원 등에 투입됐다.

게이츠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 대해 “재정수입 감소로 교육 예산을 줄이고 싶겠지만 절대 그래선 안 된다”며 “이럴 경우 교육 불평등이 심화돼 경기 회복 후에는 가난한 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할 기회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어려운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며 “ 이탈리아는 선진 7개국(G7)이면서도 지원을 깎았다”고 지적했다.

[출처] 조인스뉴스  2009.1.29  뉴욕=남정호 특파원
☞ 원문 보기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1/29/3299549.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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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는 사회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격을 향상시키는 바람직한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창조적 자본주의'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름없는 저 또한 실패와 가난의 고통을 맛보면서 진정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관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 무소유를 구도하는 수도승이 아니라면 가난을 벗삼아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부유하고 풍요로워야 하지만 이 또한 행복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이웃이 가난하고 슬프고 악하고 시끄러운데 혼자서 높은 담을 쌓아놓고 호의호식하면 행복할까요?

행복한 사회 속에서 행복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에 속할 때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이 많은 것이지요.
그래서 '창조적 자본주의'와 '창조적 기부'는 바람직한 미래사회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켠에 치우친 富를 부족한 다른 켠으로 베풀고 나누어 줌으로서 사회는 진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착한기부자재단>을 꿈꾸고 있으며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를 대하면서 우리 지척에 일어나고 있는 삼성 가문의 부족함을 개탄해 봅니다. 아직 공동善에 대해 시야를 열지 못한 이건희 회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빌 게이츠와 이건희 회장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마침 이에 대한 글이 있어 옮겨 보았습니다.

[출처] 데일리서프라이즈  2008.1.28  이석원 편집국장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와 삼성 이건희 회장

미국의 부자들을 보면 대단하다. 어마어마한 집이며, 굴리고 다니는 자동차의 화려함, 그리고 옷과 보석, 각종 장식품 등 꾸미고 다니는 것들이 가히 찬란하다고 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들은 당당하다. 자신이 누리는 부를 감추려고 하는 법이 없다. 설령 졸부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 같은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야말로 자본주의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미국 부자들이 그처럼 삶에 있어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이 향유하는 것 뿐 아니라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아낌없이 나누어 줄줄 아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미국의 부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평균적인 기부율을 보면 상당수의 부자들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번 돈 내가 마음껏 호사스럽게 쓸 뿐만 아니라 나 같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나누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사치를 한다고 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사람들을 보면 금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들은 확실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지만 남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만큼의 기부를 통해 자신의 부를 재분배하는 일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대한 평가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에 있어서도 늘 정당할까?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는 전 세계 최악의 독점 기업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하부 단위 노동자들은 일정정도의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고, 또 마이크로 소프트로 인해 자국의 유사 중소기업이 처참한 도산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워렌 버핏의 투자 형태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의 기가 막힌 주식 투자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전 세계 개미투자자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경우에 따라 한 기업을 부도덕하게 인수 합병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적인 전 세계인들은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을 ‘아주 선한 부자’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들이 잘못하는 일까지도 심정적으로 이해해 주게끔 만큼의 기부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부자들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든, 현대기아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든, 그들이 1년에 얼마만큼의 사유재산을 벌어들이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사회를 위해 재분배하는 돈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사유재산의 몇 % 정도가 사회로 환원되는지 모르겠다.

자진해서 환원하거나 기부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단히 잘못해서 법원에서 명령을 했거나, 또는 여론을 의식해 얼마간의 재산을 내놓겠다고 한 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내놓는 시기를 늦추고 미루기도 한다.

태안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삼성은 신문지상에 “잘못했다”고 광고를 내기는 했지만 보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다. 잘못한 것은 있지만 배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누가 야단치지 않고, 항의하지 않고, 데모하지 않아도 알아서 책임질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검찰에서, 또 법원에서 뭐라고 얘기하는지 눈치나 살살 보고 있다.

설령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더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지 않더라도, 근근히 먹고 사는 서민들이 ARS 전화 한번 걸어 2000원 씩 걷고 있는 것을 보면, 수십, 수백억 원 쯤 시원하게 내놓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어민들이 모진 목숨 끊고, 엄동설한에 서울역 한복판에서 시위를 해도 그날 밤 수십만원 짜리 저녁밥을 먹고, 수백만원어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수 만명의 어민들이 찢어진 속옷 들고 나와 돌맹이 기름때를 닦고, 먹고 살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을 때 수억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수백만원 짜리 옷 자랑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던 빌 게이츠 회장이 지난 2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말을 했다. 그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자본주의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하루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전 세계 10억 빈민을 도울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고 주창했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받은 혜택을 일부에 국한시켜서는 안된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다. 빌 게이츠가 2000년에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배포한 ‘빌 게이츠 연설문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기업 커뮤니티가 어떻게 정부, 비정부 조직들과 연계해 기술적인 혁신을 이뤄내고, 불평등을 줄여 나갈 것인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 기업가가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빌 게이츠는 ‘가난은 나랏님도 구하지 못한다’는 우리의 옛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책임방기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2005년 한 해 동안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구호활동에 135억 6000만 달러(한화 약 12조 8000억원)를, 2006년엔 156억 2500만 달러(한화 약 14조 80000억원)를 썼다. 워렌 버핏은 빌 게이츠의 이 재단에 총 370억 달러(한화 약 35조 1400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현재까지 34억 달러(한화 약 3조 2200억원)을 기부했다.

이런 부자와 함께 사는 미국인들과 그 부자들의 자본주의를 마냥 부러워만 해야 되는 것인지. 우리나라 재벌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 항상 기대난망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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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자본주의, 창조적 기부는 기업의 사회적 의무

1973년 하버드대에 입학했으나 1975년 자퇴했었던 빌 게이츠는 지난해 6월 32년 만에 하버드대 명예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빌은 그 자리에서 이 세상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과 가치에 관해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세상에 지독한 불평등, 즉 수백만 명을 절망에 빠뜨리는 건강과 부(富), 기회의 불균형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하버드대를 떠났다"고 고백하면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주창하였습니다. '시장'과 '기술혁신'을 활용하여 가난과 질병으로 인한 인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빌 게이츠가 지난 1월 24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다시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창했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자본주의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특권층의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그의 호소에는 가진 자, 누리는 자의 도덕적 의무와 소명의식까지 담고 있다. 창조적 자본주의를 이끌어갈 주체는 바로 기업이다.

기업들은 기업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으며 이익의 일부는 사회적 의무로서 도움이 필요한 기업과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富를 나누고 베풀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개인이나 기업을 도와야 합니다.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의무로 격상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소비적 도움보다도 생산성 있는 비즈니스 활동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움 받은 쪽에서 富의 생산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후원자가 복제되는 셈이지요.

만일 <착한기부자클럽>나 재원을 확보한다면 기업과 개인의 생산적인 활동에 창조적인 기부를 후원할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을 통하여 새로운 기부를 창출할 수 있기에 매력적입니다.

<착한기부자클럽>의 컨셉은 빌 게이츠가 주창하는 '창조적 자본주의'와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富를 나누고 베풀어서 세상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가진 자와 가진 기업이 富를 기부함으로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 빌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

빌 게이츠 회장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21세기를 위한 자본주의는 시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자본주의는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만 작동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시장의 힘이 어떻게 소외계층을 도울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기업들과 비정부조직이 함께 일하면서 전세계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시장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게이츠가 처음으로 주창한 '창조적 자본주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기업도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업의 봉사를 사회적 책임 차원이 아닌 의무로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사회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기업들이 소외계층을 위해 환원할 의무가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게이츠는 오는 7월경 MS의 회장직에서 물러나 부인과 함께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한 자선활동에만 전념할 계획이다. 게이츠 회장이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모임인 다보스 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강조한 것은 구호금 전달과 자원봉사자의 투입이라는 전통적인 자선재단의 활동에서 벗어나 재단사업을 비즈니스화하는 청사진과 함께 각국 정부의 정책 지원 및 초일류기업들의 연대가 필요한 까닭이다.

앞으로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전파에 심혈을 기울일 전망이다. 게이츠는 "전세계는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여성과 소수자들의 인권이 개선되는 등 끊임없이 더 나아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개선은 과학과 기술, 의학의 발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낙관론자지만, 참을성이 없는 낙관론자"라면서 "대부분의 혜택은 개선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혜택이 별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이츠는 "현명한 자본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더 넓은 사회의 이익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부가 증가할 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도태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 자본주의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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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일보  2008.1.14  민병오 기자
美 ‘자선단체 정보공개 요구’ 거센 바람
한해 기부금 2950억弗… “용처 밝혀라”

미국은 ‘기부의 나라’로 통한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 세계적인 갑부들이 앞다퉈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천문학적인 기부금을 내놓는다. 2000년 설립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기금은 376억달러(약 35조2500억원)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버핏은 2006년 370억달러를 이 재단에 넘기기로 했고 지금까지 34억달러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미국인들이 2006년 한해 동안 자선단체에 기부한 금액만도 무려 2950억달러(276조56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기부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그동안 감시의 무풍지대나 다름없던 자선단체와 공익재단 등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특집기사를 통해 수십만개에 달하는 자선단체와 공익재단이 늘어나는 기부금을 제대로 사용하는지, 자선사업은 효율적으로 이뤄지는지를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선단체 정보 공개하라=미 국세청(IRS)은 ‘양식 990’을 통해 매년 자선단체들의 기부금과 재정 내역, 임원 보수, 주요 사업내용 등 자선사업 전반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연간 2만5000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받은 자선단체는 이 양식을 작성해 제출해야만 면세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기부자들이 IRS에 공개된 정보를 통해 자선단체의 정보를 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분량이 워낙 방대한 데다 자선단체들이 사업의 성패 여부나 비용, 임원 보수 등 민감한 부분은 ‘빈칸’으로 적어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재 활동하는 자선단체 중 약 30%가 활용 가치 없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양식을 제대로 채우지 않아도 벌칙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있는 그대로 정보를 공개하면 비용 남용이나 특정 임직원 특혜시비 등에 휘말리는 등 귀찮은 일만 생긴다는 ‘비밀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기부자들은 힘들게 번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대신 자선단체가 그 돈을 꼭 필요한 곳에 사용했는지, 성과는 있었는지를 알기를 원한다. 기부자들은 특히 자선단체와 재단은 그들의 웹사이트에 회계장부는 물론 이사회 멤버와 목표 성취를 위한 노력, 문제해결 과정 등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자선단체가 엄격한 양식의 평가서 등 자체적인 정보공개 기준을 만들어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자선단체에 대한 지나친 정보 공개는 자선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하고 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오히려 정확한 정보공개가 기부자의 신뢰를 회복시켜 자선시장 자체를 활성화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디애나대학 자선센터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부를 하는 미국 가구의 3분의 2는 비영리기관이 행정비용을 줄이고 사업 성과를 보여준다면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다고 응답했다.

◆늘어나는 감시망=자선단체의 정보공개 회피를 막기 위한 감시활동이 늘고 있다. 일부 감시단체는 온라인으로 자선단체 관련 정보와 함께 이들에 대한 평가까지 공개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주요 감시단체로는 ‘채리티내비게이터(CharityNavigator.org)’와 ‘가이드스타(GuideStar.org)’, ‘기브(Give.org)’ 등이 있다. 채리티내비게이터는 미국 내 5000여개 자선단체에 관한 정보와 평가를 제공하고 있으며, 회원 등록만 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채리티내비게이터의 자료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본부를 둔 자선단체 ‘유나이티드 웨이 오브 아메리카(UWA)’는 예산의 90%를 사업 프로그램에 사용하고 2002년부터 3년간 연간 성장률이 21%에 달해 효율성 평가에서 별 4개 중 3개를 획득했다.

가이드스타는 IRS에서 제공되는 ‘양식 990’을 기반으로 170만개 비영리기관의 회계자료를 검색하기 쉽게 만들었고, 각 단체가 자발적으로 보고한 정보도 제공한다. ‘현명한 기부연맹(WGA)’에 의해 운영되는 기브도 1200여개 자선단체의 수입과 지출, 자산 등의 정보와 평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가이드스타의 버즈 슈미트 회장은 “처음에는 경계했던 자선단체들의 호응도 높아져 자발적으로 보고서를 보내오는 단체 수가 3년 전 7만5000개에서 지난해에는 12만개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들 감시단체는 기부자들이 공개된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도 소개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기부한 자선단체의 성과와 임원 연봉 등을 알고 싶을 경우 비슷한 일을 하는 유사한 규모의 단체와 비교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선단체들이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정하지 않을 경우 의회에서 이를 강제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미 국세청 면세·정부기관 담당 커미셔너인 스티븐 밀러는 지난해 10월 자선단체 모임 연설에서 “자선단체들이 자체적인 규정 마련에 실패하면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세청도 자선단체들이 ‘양식 990’을 충실하게 작성하지 않을 경우 면세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 특정한 벌칙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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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쿠키뉴스  2008.1.14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과
‘사랑받는 富者’ 보고 싶다

빌 게이츠 회장의 '마이크로소프트(MS) 근무 마지막 날' 동영상이 화제다. 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자 전자박람회(CES) 기조연설에 앞서 게이츠 회장 자신이 만든 동영상이 4000여명 청중은 물론이고 이 동영상을 본 전 세계인에게 적지 않은 즐거움과 감동을 준 것이다.

게이츠 회장은 동영상에서 가수, 영화배우, 정치인으로 진출하려 하지만 각 분야의 현역 유명 인사들로부터 번번이 퇴짜맞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힐러리 클린턴으로부터는 정치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훈수를 들었고,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조차 모르는 버락 오바마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왕년의 끼를 살려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며 가수로의 전업도 시도했지만 유명 프로듀서들의 반응은 역시 시큰둥했다. 영화배우의 꿈을 안고 스필버그 감독에게 부탁하지만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고 중얼거리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보인다.

오는 7월 MS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빌 & 멀린다 재단을 통해 자선 사업에 전념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세계 최고 갑부의 어눌한 구직 활동에 모두들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사랑받는 기업인의 모습이다.

게이츠가 누구인지를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다. 그는 MS의 성공 신화를 일군 이 시대 최고의 창조적 혁신가며 성공한 기업인이다. 100원을 벌면 60원을 기부한 자선가다. 정보기술 혁신을 통해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그가 은퇴 후 지구상의 모든 빈곤과 싸우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사랑받는 부자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면 그것은 빌 게이츠일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부자가 사랑받기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부자와 사회적 가치가 함께 가는 것은 어려운 듯 보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자는 분명 부러움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사랑받는 대상이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도 부자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엄청난 부를 쌓은 사람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넘어 존경심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받는 부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자본주의 역사가 일천해서, 압축성장으로 그럴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해서, 부의 축적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서, 부의 공공성 확장에 인색한 문화 때문에 등등의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랑받으려면 최소한 부자는 아니어야 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라 하기 어렵다.

지금은 모든 것을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시장은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결과가 균등하지 않다. 세상은 점점 더 경쟁적이고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남을 즐겁게 하고 함께 나누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이 있다면 그것은 남에겐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한 모습일 것이다.

끊임 없이 누구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게이츠의 모습에서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는 사랑받는 부자를 그려본다. 사랑받는 부자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사랑받는 부자를 많이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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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일보  2007.12.29  이현세(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나눔과 실천 - 커피 한 잔 값으로 소중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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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어둡다 보니/빛이 그리운 세상//웅크리고 떠는 풀/숨죽여 사는 뿌리//온 누리 다 밝히면 좋으련만/그럴 수 없어/한 구석이라도 밝히고자/빛을 던지는 사람//봉사와 헌신/사랑의 실천으로/닿지 않은 곳을 향하여/내미는 나눔의 손//따뜻하여라/언 땅마저 녹일지니’. (이창범님의 ‘나눔의 손’ 중에서)

어느새 세밑이다. 모두가 행복할 것만 같은, 아니 행복해야 하는 연말연시이지만 아직도 추운 겨울을 쓸쓸히 보내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이들에게 있어 요즈음 같은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란 그저 먼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차라리 피하고 싶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특히 기름 유출 참사로 큰 피해를 본 서해안 주민들은 그 어느 해보다도 춥고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한 이들. 기름투성이인 전복을 쥐어든 채 한 서린 눈물만을 흘리고 있던 어느 해녀 할머니의 눈물은, 단순한 슬픔에서 나오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일순간 과거·현재·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긴 극한의 절망이 담겨 있었다. 사랑과 나눔이 절실한 때다. 혼자 가기에는 너무나 멀고 험한 길처럼 보인다. 끝이 없는 절망의 길처럼 보인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나눔의 유대감이 매우 강했던 민족 중 하나다. 상부상조나 환난상휼과 같은 아름다운 미풍과 전통을 지닌 민족이다. 두레나 계와 같은 시대 나름의 사회부조 시스템을 통해, 배고픔과 가난 속에서도 십시일반 서로를 돕는 나눔의 정서를 면면히 이어 왔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화 때문일까. 빠른 물질적 성장에 미치지 못하는 정신문화의 지체현상 때문일까. 오늘날 우리의 나눔과 기부 문화는 그다지 높은 성적표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분명 과거에 비해, 꾸준히 양적 성장세를 이어 온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 아직 선진국의 수준으로 일컫기에는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남음은 비단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연말연시 한시적으로 치우친 기부 분위기. 기업 위주의 편중된 기부 행태. 진정성이 결여된 홍보성 기부 풍토 등. 수준 높은 기부 문화를 논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은 기부 활동이 일상화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미국인들의 전체 기부액이 274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또 이 가운데 개인 기부자들의 돈이 전체 기부액의 75%를 차지한다고 한다. 가히 미국 사회의 보편화된 기부 문화와 미국인들의 나눔에 대한 의식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수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기부문화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적십자 회비의 경우 1년에 한 번, 각 세대에 고지되고 있다. 이 성금으로 이재민들과 소외계층들이 재기의 큰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적십자 회비 모금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어려운 이웃에 소중한 사랑을 전하는 적십자 회비 모금에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웃들은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점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비단, 적십자 회비뿐만 아니라 국내 여타 이웃돕기 성금들도 모금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작지만 꾸준하게, 보다 많은 사람이 십시일반 참여하는 기부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진정한 나눔 문화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런 점에서 사회 지도층의 책임 있는 솔선수범이 아쉽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경우 현재 세계적인 부호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거액의 기부재단을 설립하고 또 지원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끌고 있다. 부의 사회 환원이라는 모범적 실천을 통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나눔과 자선행위는 미국 전역의 기부문화 활성화에 촉매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사회공헌 바람이 최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참으로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폐지를 주워 마련한 전 재산을 기부한 어느 할머니에서부터, 밤무대 악사 생활로 힘들게 번 돈을 장학금으로 기탁하고 세상을 떠나 간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 준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역시 평범한 우리의 시민들이었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주위의 이웃을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너무 거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자. 또 마음으로만 격려하고 박수치는 ‘무임승차’에서 내려, 작은 것에서부터 소중한 나눔을 실천해 보자. 조금만 돌아보면 작지만, 큰 사랑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적십자사와 어느 방송사가 함께 진행했던 생방송에 적십자 홍보대사로 함께 한 적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평소에 아끼던 저마다의 애장품을 기증하고 이를 통해 소외계층을 돕는, 나눔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책, 볼펜, 청바지, 도자기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애장품의 가격이 높고 낮음은 부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애장품은 말 그대로 소장한 이의 사랑이 듬뿍 담긴, 마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따스한 마음들이 모여 어려운 이웃에 소중한 희망으로 전해지는 현장에 함께 함으로써 훈훈한 온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나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세계 4대 생불로 칭송받고 있는 틱낫한 스님은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평화를 실천하면 된다”고. 사랑을 흔히 동사(動詞)라고들 얘기한다. 실천의 소중함을 강조한 희망 섞인 메시지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연말연시 나눔과 실천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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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너스캠프 Blog, 기부문화&CSR 2007/07/11 10:30  b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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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진화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업경영의 필수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국제적 컨설팅 그룹인 맥킨지가 6월 발간한 스탠포드 사회변혁보고서(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에서는 기업 경영자가 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때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모델을 제시했다. 또 지난 7일 하버드 졸업식에서 명예학위를 받은 빌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졸업 연설의 화두로 잡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양대 축인 시장과 기술혁신을 이용해 가난과 질병을 해결하자는 것이 그 요체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시 강조하고 있다.

게이츠는 “시장의 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쓸 수 있고 만약 정부와 기업이 시장의 힘을 확장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할 것”이라며 “그게 불평등에 시달리는 사람을 돕는 길”이라고 창조적 자본주의 개념을 설명했다.

그는 “만일 기업이 시장에서 이윤을 찾고 정치가가 표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불평등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방안은 바로 창조적 자본주의 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생명공학과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이 시대의 혁신으로 가난을 근절할 수 있다”고 시장과 기술혁신의 역할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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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chairman Bill Gates delivers the Commencement address at Harvard University in Cambridge, Massachusetts. Photo: Brian Snyder

이에 대해 미국의 기업 소식 전문 온라인 매체 <e-week>는 “기업과 정부 지도자들에게 기술혁신과 성장으로 축척한 부를 좀 더 가치 있게 쓰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기업이 자산과 역량을 가치 있게 쓰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맥킨지 컨설턴트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범위가 지구온난화, 아동 빈곤, 노동환경 개선, 환경 문제 등 다양해지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시민단체와 개인의 힘이 커지고 있어 이슈가 기업에 가져올 충격 또한 증가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기업 경영진은 주주에게 최고 이익을 주는 것만이 기업의 책임이라고 믿고 있다. 맥킨지 측은 이에 대해 “기업은 사회적 책임과 이슈에 연관됨에 따라 두 가지 전략적 이점을 가진다”며 근거를 제시한다. 먼저 사회적 책임과 이슈는 기본적으로 산업의 전략과 전망을 변화시키며 때론 기업의 나쁜 평판을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과 이슈를 통해 새로운 고객의 선호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구가 충족되지 않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시장을 만들어 내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광범위해질 수 있다. 사회적 요구 수준이 높아지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준 또한 높아진다. 법적으로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면 기업의 평판을 해칠 수 있다. 불공정한 고용으로 비난을 받은 나이키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는 미국인과 비만, 그리고 기업의 상관관계이다. 미국인들은 과거에 자신의 체중을 본인의 책임으로 여겼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강에 안 좋은 제품을 파는 기업이 과체중 인구가 늘어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기업과 소비자와의 소송 사례도 이러한 인식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이슈가 홍보나 사회공헌 부서로 보내지는 지엽적인 과업이 아니다. 대신 CEO의 리더십과 조직 전체의 협력이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좋은 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영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까지 다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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