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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메이커 756호(2008/01/01) 정원식 기자
기부를 통해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

(왼쪽부터) 오완금, 은종복, 김지흥
"세상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강한 자들에게 향하는 길이며 그건 욕망이고 전쟁이다. 다른 하나는 약한 자들에게 향하는 길이며 그건 바로 평화다.” 지난 1월 선종한 ‘프랑스 빈민의 아버지’ 피에르 신부의 말이다. 성직자가 되지 않더라도 평화를 실천하는 방법은 있다. 다음은 생활 속에서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문구점. ‘도날드.com’이라는 상호가 이채롭다. 어쩐지 문구점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만화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더 잘 어울릴 법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어쩌면 기막힌 우연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주인 오완금씨(50)의 웃음이다. 폭죽처럼 요란하게 터지는 웃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 은근하게 스며드는 웃음. 그가 웃을 때마다 좁고 어두운 가게 안이 환해졌다. 아닌게 아니라 그 웃음은 만화 속 주인공들의 천진함을 닮았다.

“돈이 없다고 안할 수 없지 않나?”
그의 이타주의는 소박하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그는 “육교에 앉아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을 볼 때면, 그의 손은 어느새 전화기를 쥐고 있다. 그가 아름다운재단이 벌이는 ‘나눔의 가게’에 동참한 것도 어느 방송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서다.

보통 사람들에 견주어 그의 마음이 타인들의 불행 앞에서 더 민감하게 떨리기는 하지만, 오씨가 기부하는 돈은 소박하다. 그가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돈은 달마다 아름다운재단에 내는 1만 원과 꽃동네에 내는 5000원이 전부다. 물론 통장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 더 많겠지만 말이다.

그가 눈에 보이는 모든 불행에 무작정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 밤 그는 노량진 육교에서 구걸하던 노인을 국밥집으로 데려갔다. 늦은 시간이라 걱정스러운 마음에 “어르신 집에는 어떻게 가세요”라고 물었다. 노인의 대답에 오씨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택시 타고 가면 돼.” 그날 이후 오씨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국철을 탔는데, 어느 장애인이 돈을 안 준다며 자기 의족을 빼서 때리려고 하더라. 일반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남길까 싶어 안타까웠다.”

지금 오씨의 살림살이가 넉넉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거 문구점을 찾던 사람들은 대형마트나 팬시점으로 몰린 지 오래고, 작게나마 매출에 도움을 주던 법원도 다른 곳으로 이사할 채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작은 기부’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잘 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언제까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나.”

성균관대 앞 서점 ‘풀무질’ 주인 은종복씨(43). 인문사회과학 서점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빚은 착시일까, 그는 진지했다. 자신의 신념과 행동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곱씹어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미간의 주름이 그런 인상을 더욱 부추겼다.

‘풀무질’은 1980년대의 산물이다. ‘풀무질’이 1980년대의 산물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이 서점의 출생연도가 1985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람을 일으켜 쇠를 담금질하는 도구의 이름을 딴 이 서점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1980년대 젊은이들의 열정이 낳은 공간인 동시에, 그 정신을 기필코 간직하려 분투하는 사람이 유지하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84학번인 은씨는 1993년 4월부터 ‘풀무질’ 일을 시작했다. 그 14년 동안 서점은 숱한 위기를 맞았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이적표현물 단속’의 바람이 불어닥쳤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활자매체의 위기라는 시대적 전환기의 고비에서 흔들렸다. 흑자라는 말은 낯설고, 적자라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새삼스럽다.

인권운동사랑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태일기념사업회, 노들장애인야간학교, 아름다운재단, 풀꽃세상을위한모임. 그가 달마다 후원금을 내는 단체들의 목록 중 일부다. 어쩐지 허전하다. 손가락 열 개를 두 번은 써야 다 셀 수 있을 듯한 그 목록에 양로원이나 고아원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진보, 평화, 인권에 기여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나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가끔씩 내 얘기를 듣고 여러 자선 단체에서 후원을 부탁하는 연락이 온다. 하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

후원금이라고는 하지만 은씨가 한 단체에 달마다 내는 돈이 3만 원을 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워낙 단체 수가 많다 보니 총액으로는 매달 30만 원 가까이 된다. 주위에서 그 돈을 서점 운영에 보태는 게 어떠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기부하지 않으면 책방을 운영하는 뜻이 사라진다. 먹고사는 데만 신경 쓰면 무슨 의미가 있나. 기부는 내 마음밭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대기업들의 기부를 바라보는 은씨의 시각은 어떨까. “큰 기업들의 기부는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한 또 다른 투자다. 작지만 땀을 흘려 1만 명이 1만 원씩 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대기업의 기부에 대한 그의 시각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도 그의 다음 말에는 유보 없는 공감을 보낼 수 있을 듯싶다. “나눔이란 어떤 이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을 때 치료해주는 것이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그가 낭떠러지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낭떠러지 자체를 없애는 일이다.”

“만 명이 만 원씩 내는 게 더 의미”
밤 늦게 김지흥씨(26·인천대 4학년)를 만났다. 경영학과 졸업반인 그는 졸업 논문을 제출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외모로든 성격으로든, 또래 대학생들과 유별나게 달라보이는 구석은 없다. 그런 김씨가 지난 여름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6주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100만 원을 한 시민단체의 계좌로 고스란히 입금한 것이다.

“그냥 갖고 있다가는 다 써버릴 것 같아 은행에 들어가서 곧바로 계좌번호를 눌러버렸어요.” 손이 떨리지 않았냐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김씨는 “몇 번을 망설였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름에 안산의 한 복지관에서 그 지역 빈곤층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는데, 충격이었어요. 컴퓨터가 없는 아이들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성격인지 궁금했다. 김씨는 장난스러운 눈빛을 띠며 말했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궁궐 안내를 할 때 꼬마들이 어찌나 말을 안 듣던지.” 김씨는 2005년부터 격주로 궁궐지킴이로 일하고 있다.

거금을 ‘쾌척’하는 과감성을 지녔지만, 김씨의 하루 용돈은 5000원이다. 집에서 1만 원을 받아 이틀 동안 쓴다. 정말 5000원만 쓰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닌데”라며 슬쩍 뺀다. 또 다른 기발한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면접 비용을 챙겨서 기부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오라는 데가 없다며 웃었다. 그는 진지했지만, 진지함이 발랄함을 해칠 정도로 무겁지는 않았다.

김씨에게는 ‘허주’라는 호가 있다. ‘빈 배’라는 뜻이란다. 교양 수업 시간에 들은 말이다. “빈 배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든 머물 수 있고, 무엇이든 채울 수 있고, 무엇이든 비울 수 있다.” 거의 달인의 경지라며 슬쩍 비꼬았더니 그가 정색하고 대답했다. “욕심 부리며 사는 건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걷는데 그가 커다란 비밀이라도 털어놓는양 귓가에 대고 말했다. “저 내일 태안 가요.” 열정을 품은 대상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20대의 치기가 느껴졌지만, 그 치기는 더없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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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ster™